어머니 통장을 들고 은행 창구 앞에 섰다가 그냥 돌아 나오던 날, 저는 주차장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본인 확인이 안 되면 정기예금 해지는 어렵습니다”라는 직원분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딸인 제가 어머니 요양비를 어머니 돈으로 낼 수조차 없다는 현실이 너무 막막했거든요.
저는 서울에 사는 40대 딸이고, 정신건강 분야에서 작업치료사 1급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상 치매 어르신과 보호자분들을 매일 만나면서도, 정작 70대 우리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고 나니 저 역시 다른 보호자들과 똑같이 헤맸습니다. 특히 치매 어머니 통장 관리 문제는 병원에서도, 은행에서도 속 시원히 알려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 가족은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고, 서류 준비부터 후견 개시 결정까지 약 5개월이 걸렸으며, 변호사 없이 직접 진행해서 총 100만 원 안쪽의 비용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직접 겪은 성년후견 신청 절차, 준비 서류, 실제 지출한 비용, 그리고 후견 개시 이후 통장 관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까지 순서대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은행 문턱에서 막혀 계신 분이라면, 이 글 하나로 전체 그림이 잡히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고 1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요양원 입소를 준비하면서 어머니 명의 정기예금을 해지하려고 했는데, 은행에서는 본인 의사 확인이 어려우면 가족이라도 처리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위임장을 받아오라는데, 이미 어머니는 위임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서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70대 아버지가 계시지만, 아버지 역시 연세가 있으셔서 복잡한 금융 업무나 법원 절차를 감당하기 어려우셨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어머니 카드나 통장을 임의로 사용하는 건, 아무리 요양비 목적이라 해도 나중에 형제간 분쟁이나 법적 문제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 직업 현장에서 많이 봐 왔습니다. 실제로 제가 근무하며 만난 보호자분들 중에도 “그냥 비밀번호 알아서 썼다”는 분들이 계셨는데, 몇 년 뒤 재산 문제로 가족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사례를 옆에서 지켜본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본 것이 성년후견 제도였습니다. 질병이나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이 있어 스스로 사무를 처리하기 어려운 분을 위해,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 관리와 신상 보호를 맡기는 제도입니다. 후견인이 되면 어머니 명의 예금 관리, 요양원 계약, 각종 행정 업무를 법적으로 정당하게 대신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법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겁이 났지만, 막상 해 보니 순서만 알면 일반인도 충분히 직접 신청할 수 있는 절차였습니다.
신청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힌 고민은 후견 유형이었습니다. 후견 제도는 본인에게 남아 있는 판단 능력의 정도에 따라 유형이 나뉘는데, 저는 직업 특성상 표준화된 인지평가 결과를 읽을 줄 알았던 게 이 단계에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어머니의 신경심리검사 결과와 일상생활 수행 정도를 놓고 보면, 부분적인 지원이 아니라 포괄적인 보호가 필요한 상태가 분명했습니다.
| 구분 | 대상 상태 | 후견인의 권한 범위 | 저희 가족 기준 판단 |
|---|---|---|---|
| 성년후견 | 사무 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 | 재산관리·신상보호 전반(포괄적) | 중등도 이상 치매로 해당 |
| 한정후견 |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하나 일부 유지 | 법원이 정한 범위 내 지원 | 초기 치매라면 고려 가능 |
| 특정후견 | 일시적·특정 사무에 한해 지원 필요 | 특정 사무 한정(예: 예금 해지 1건) | 단발성 업무라면 적합 |
주변에서 “특정후견으로 예금 문제만 해결하면 되지 않느냐”는 조언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통장 업무 한 건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이라면 특정후견이 더 간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앞으로 요양원 계약 갱신, 실손보험 청구, 연금 관리, 병원 입퇴원 동의 등 처리할 일이 계속 생길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법원에 다시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서 저희는 성년후견을 선택했고, 지금 돌아봐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초기 치매로 어르신 본인 의사가 상당 부분 남아 있는 가정이라면,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더 존중하는 한정후견부터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관할 법원은 신청인이 아니라 피후견인, 즉 어머니 주소지 기준 가정법원입니다. 저희는 부모님이 서울에 계셔서 서울가정법원에 청구했습니다.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등이라 딸인 제가 직접 청구인이 됐고, 후견인 후보자도 저로 기재했습니다. 이때 아버지와 형제들의 동의서를 미리 받아 함께 낸 것이 심리 진행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가족 간 이견이 없다는 점이 서류로 확인되면 법원 입장에서도 판단이 빨라진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실제로 준비한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년후견개시 심판청구서, 어머니의 기본증명서·가족관계증명서·주민등록등본,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 치매 진단서와 진료기록, 어머니의 재산 내역을 정리한 사전현황설명서, 그리고 가족들의 동의서였습니다.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라는 낯선 서류가 하나 있는데, 기존에 후견 등기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서류로 후견등기 관할 기관에서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서류 양식과 절차 안내는 법제처에서 운영하는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의 후견제도 항목에서 확인하실 수 있고, 저도 신청 전에 이 사이트를 수십 번 들여다봤습니다.
실제 타임라인은 이랬습니다. 1개월 차에 서류를 준비해 접수했고, 2~3개월 차에 법원에서 정신감정 관련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저희는 대학병원에서 받아 둔 상세한 진단서와 신경심리검사 결과지를 제출한 덕분에 별도 감정이 비교적 수월하게 정리됐는데, 자료가 부족하면 법원이 지정한 병원에서 감정을 받아야 해서 기간과 비용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4개월 차에 심문기일이 잡혀 법원에 출석했습니다. 판사님이 어머니 상태, 재산 현황, 가족 관계, 후견인으로서의 계획을 물으셨고, 솔직하게 요양비와 생활비 관리 계획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5개월 차에 성년후견 개시 심판 결정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부분이 비용일 텐데요. 인터넷에는 “수백만 원 든다”는 이야기와 “몇만 원이면 된다”는 이야기가 뒤섞여 있어서 저도 신청 전에 혼란스러웠습니다. 결론은, 변호사 선임 여부와 정신감정 진행 방식에 따라 편차가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저희처럼 가족 간 다툼이 없고 재산 구조가 단순하면 직접 신청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 경우 비용은 아래 수준이었습니다.
| 항목 | 실제 지출(저희 사례) | 일반적인 범위 | 비고 |
|---|---|---|---|
| 인지액 | 5,000원 | 5,000원(정액) | 가사비송사건 공통 인지액 |
| 송달료 | 약 6만 원 | 약 4만~8만 원 | 당사자 수·관할 법원에 따라 상이 |
| 진단서·진료기록 발급 | 약 12만 원 | 5만~20만 원 | 상세 진단서 기준 |
| 정신감정 관련 비용 | 약 60만 원 | 50만~200만 원 | 기존 진료기록으로 판단 가능 시 감정 생략 가능 |
| 각종 증명서 발급·교통비 | 약 5만 원 | 5만 원 내외 |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 포함 |
| 변호사 보수 | 0원(직접 진행) | 수백만 원 | 분쟁 있으면 검토 필요 |
청구서에 붙이는 인지액은 5,000원으로 정액이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지만, 여기에 당사자 수만큼 계산되는 송달료가 더해집니다. 체감상 가장 부담이 큰 항목은 역시 정신감정 비용입니다. 다만 저처럼 평소 다니던 병원의 상세한 진단서와 검사 결과를 충실히 준비하면 감정 절차가 간소화되거나 비용이 줄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치매 진단 초기부터 진료기록을 잘 모아 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이유입니다. 또 하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라면 가사소송법 제37조의2에 따라 법원이 절차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고, 65세 이상 무연고 저소득 치매 어르신은 지자체가 후견 심판 청구와 후견인 선임 비용까지 지원하는 치매공공후견제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국번 없이 132)이나 관할 지역 치매안심센터, 지자체 노인복지 부서에서 관련 상담과 지원 여부를 안내받을 수 있으니 신청 전에 꼭 문의해 보시길 바랍니다.
결정문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발급받아 은행에 간 것이었습니다. 몇 달 전 저를 돌려보냈던 그 창구에서, 이번에는 후견인 자격으로 어머니 예금을 정리하고 요양비 자동이체를 걸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은행을 나오면서 느꼈던 안도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돈 문제가 풀렸다는 게 아니라, 이제 어머니 재산을 ‘떳떳하게, 기록을 남기며’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다만 후견인이 되면 권한만 생기는 게 아니라 의무도 생깁니다. 법원에 어머니 재산 목록을 보고해야 하고,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후견 사무 보고를 해야 합니다. 어머니 돈은 어머니를 위해서만 써야 하고, 부동산 처분처럼 중요한 행위는 법원의 허가가 별도로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감독 장치 덕분에 형제들 사이에 오해가 생길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머니 명의 통장 하나를 후견 전용으로 정리하고, 모든 지출 영수증을 월별로 파일에 모아 두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보고서를 쓸 때도 편하고, 가족 누구에게든 투명하게 보여 줄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지금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딸이자 치매 어르신을 매일 만나는 작업치료사로서 세 가지만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은행에서 막히기 전에 미리 준비하세요.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면 진단서와 검사 결과를 그때그때 챙겨 두시는 것만으로 성년후견 절차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둘째, 가족 동의를 먼저 모으세요. 후견은 법원 절차이기 이전에 가족의 합의 과정입니다. 셋째,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무료 상담 창구를 활용하세요. 가정법원 민원실, 치매안심센터, 법률구조공단 모두 생각보다 친절하게 안내해 줍니다. 어머니 통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5개월 전의 저에게 이 글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 가족의 그 막막한 첫걸음에 작은 지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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