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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치매였던 어머니, 진단명이 바뀌기까지 198일

어머니가 된장찌개에 설탕을 세 번 넣던 날, 저는 그걸 우울증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건강 분야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면서 남의 부모님 인지기능은 그렇게 들여다보면서, 정작 제 어머니는 여섯 달을 놓쳤습니다.

부모님이 갑자기 말수가 줄고, 밥을 거르고, 새벽에 깨어 앉아 계신 걸 보면 대부분의 자녀는 우울증을 먼저 떠올립니다. 병원에서도 첫 진단명이 우울증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항우울제를 먹고 기분은 올라왔는데 살림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지점에서 치매 진단 과정을 따로 밟아야 합니다. 저는 그 판단을 여섯 달 늦게 했고, 그 여섯 달 동안 무엇을 놓쳤는지 날짜별로 남겨두었습니다.

이 글에는 초진일부터 최종 진단일까지의 실제 기록, 검사별로 걸린 시간과 제가 결제한 금액, 치매안심센터에서 헛걸음한 이유, 그리고 전문의가 우울증과 치매를 갈랐던 결정적 지점이 들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서 계신 분이라면 저보다 석 달은 빨리 도착하실 수 있습니다.


3월 12일 — 첫 진단명은 ‘노년기 우울증’이었습니다

아버지 기일이 2월이었고, 그 뒤로 어머니는 저녁을 거르셨습니다. 74세, 혼자 사시는 집. 새벽 3시에 불이 켜져 있다는 이야기를 옆집에서 들었습니다.

읍내 정신건강의학과에 모시고 갔습니다. 그날 어머니가 받은 검사는 단축형 노인우울척도(SGDS-K) 15문항이었습니다. 예·아니오로 답하는 자기보고식 검사이고, 8점 이상이면 전문의 상담을 권합니다. 어머니는 11점이었습니다.

진단명은 노년기 우울증. 에스시탈로프람 5mg으로 시작해 2주 뒤 10mg으로 올리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인지검사도 같이 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의사는 우울이 심한 상태에서 인지검사를 하면 점수가 실제보다 낮게 나오니 우울 치료를 먼저 하고 다시 보자고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이 심하면 집중력과 처리 속도가 떨어져서 인지검사 결과가 왜곡됩니다. 임상에서 흔히 쓰는 순서입니다. 다만 저는 “다시 보자”는 말의 기한을 스스로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 실수였습니다.


6월 4일 — 기분은 올라왔는데 냉장고는 그대로였습니다

약을 시작한 지 12주째 되는 날, 재검사에서 우울척도 점수는 11점에서 5점으로 내려갔습니다. 절단점 아래였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아침에 일어나셨고, 마을회관에도 나가셨습니다. 저는 치료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주 토요일에 어머니 집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 4모
  • 뜯지 않은 같은 상표 간장 3병
  • 냉동실에 든 어머니 돋보기

같은 브랜드 간장을 세 번 산 건 기억의 문제이지 기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때부터 저는 어머니와의 통화를 녹음했습니다. 3주 동안 통화 11건 중 9건에서 “밥은 먹었냐”는 질문이 한 통화 안에서 두 번 이상 반복됐습니다.

작업치료사로 일하면서 제가 늘 보던 지표가 있습니다. 우울증에서 회복되면 수단적 일상생활동작, 즉 장보기·약 챙겨 먹기·돈 계산 같은 기능이 기분보다 조금 늦게, 그러나 확실히 따라 올라옵니다. 기분은 올라왔는데 이 기능이 제자리라면 원인이 하나 더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남의 어머니를 볼 때는 이 기준을 썼고, 제 어머니한테는 쓰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검사, 제가 남긴 기록 그대로

체감이 아니라 영수증과 메모에 남은 것만 옮깁니다.

7월 3일

  • 장소: 관할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 검사: 인지선별검사(CIST). 13문항, 30점 만점, 지남력·기억력·주의력·언어·시공간·집행기능 6개 영역
  • 소요: 접수부터 결과 설명까지 22분
  • 결과: 18점, ‘인지저하’로 분류
  • 비용: 0원

9월 5일

  • 장소: 치매안심센터 협약병원 신경과
  • 검사: 신경인지검사 + 전문의 진찰
  • 소요: 1시간 55분. 어머니가 중간에 두 번 쉬겠다고 하셨습니다
  • 비용: 그날 결제 158,000원

9월 19일

  • 장소: 같은 병원
  • 검사: 감별검사 — 혈액검사(갑상선기능, 비타민B12, 전해질, 매독혈청) + 뇌 MRI
  • 소요: 채혈 12분, MRI 촬영 26분, 대기 포함 3시간 10분
  • 비용: 그날 결제 194,300원

검사비는 나중에 일부 돌려받았습니다. 만 60세 이상이면서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인 경우 진단검사비는 최대 15만원, 감별검사비는 의원·병원·종합병원 최대 8만원, 상급종합병원 최대 11만원까지 지원됩니다.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분만 대상이라 결제액 전부가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진단검사 쪽에서 지원을 받았고, 입금은 진료일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 들어왔습니다.

선별검사와 진단검사를 치매안심센터에서 받으면 무료입니다. 저처럼 병원에서 먼저 받으면 지원 한도 안에서 사후 정산하는 구조가 됩니다. 검사 순서를 어디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실제로 내는 돈이 달라집니다.


8월 20일 — 치매안심센터에서 헛걸음한 두 가지

7월 3일에 ‘인지저하’ 결과를 받고 다음 단계 접수를 하러 간 날, 그냥 돌아왔습니다. 이유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소득 확인 서류를 안 챙겨 갔습니다. 검사비 지원은 지원신청서와 소득·재산 조사 동의서를 함께 내야 접수가 됩니다. 저는 어머니 신분증만 들고 갔고,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가 없어서 그날 접수가 안 됐습니다. 정부24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앱에서 5분이면 뽑는 서류였습니다.

둘째, 협약병원이 아닌 곳에 예약을 잡아둔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미 다른 병원 신경과에 8월 27일 예약을 넣어둔 참이었는데, 센터 직원이 목록을 보여주며 그 병원은 협약병원이 아니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대로 갔으면 검사는 받되 지원은 못 받는 상황이 될 뻔했습니다. 예약을 취소하고 9월 5일로 다시 잡았고, 그 사이 열이틀을 버렸습니다.

거주지 치매안심센터 위치와 협약병원, 검사 절차는 중앙치매센터 공식 사이트(https://www.nid.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화로 물어보는 편이 빠르면 치매상담콜센터 1899-9988로 걸면 됩니다.

한 가지 더 적어둡니다. 8월 20일 그날, 어머니는 보건소 주차장에서 차에서 안 내리셨습니다. “치매 검사받으러 가자”고 말한 게 원인이었습니다. 40분을 실랑이했고 결국 그날은 어머니 없이 저 혼자 창구만 다녀왔습니다.

7월 3일에 검사가 가능했던 건 제가 같이 검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치매안심센터에서는 보호자도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도 요즘 깜빡해서 받아보려는데 같이 가자”는 말과 “검사받으러 가자”는 말의 차이가, 저희 집에서는 검사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차이였습니다.


9월 26일 — 진단명을 바꾼 건 점수가 아니라 ‘단서 회상’이었습니다

결과 설명을 듣던 날, 의사가 짚은 건 총점이 아니었습니다. 지연회상 항목 하나였습니다.

검사에서 단어 세 개를 외우게 하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는 세 개 모두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다음이 갈림길이었습니다. 검사자가 “하나는 과일이었어요”라고 힌트를 줬는데도 어머니는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세 개 중 0개였습니다.

의사가 설명한 차이는 이랬습니다.

우울증에서 오는 인지저하는 정보를 넣어두긴 했는데 꺼내는 힘이 약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단서를 주면 상당수 떠올립니다. 검사 중에도 “모르겠다”며 아예 시도를 안 하는 반응이 많습니다. 반대로 알츠하이머병에서는 저장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단서를 줘도 나오지 않습니다. 본인은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오답을 자신 있게 말하기도 합니다.

MRI에서는 내측측두엽 위축 소견이 나왔습니다. 혈액검사에서 갑상선기능저하나 비타민B12 결핍 같은 되돌릴 수 있는 원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종 진단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 경도. 우울증은 사라진 게 아니라 함께 있는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오래 붙들었던 오해 하나를 적어둡니다. 저는 3월의 우울증 진단이 오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노년기 우울은 치매의 초기 증상으로 먼저 나타나기도 하고, 위험요인이기도 합니다. 두 진단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제가 놓친 건 진단이 틀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울증 치료가 효과를 낸 뒤에도 남아 있는 것들을 다시 세어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3월 12일 초진에서 9월 26일 최종 진단까지 198일이었습니다.


우울증과 치매를 가르는 다섯 가지, 제가 다시 본다면 여기부터 봅니다

진료실에 가기 전에 자녀가 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건 진단이 아니라 관찰 항목이고, 판단은 전문의가 합니다. 다만 이 다섯 가지를 정리해서 가면 진료 시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9월 5일 진료 때 이 내용을 A4 한 장으로 뽑아 갔고, 의사가 그 종이를 검사 결과지 옆에 놓고 봤습니다.

1. 시작점을 말할 수 있는가 우울증은 대체로 계기와 시기가 잡힙니다. 저희는 “아버지 기일 이후”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치매는 가족도 언제부터인지 특정하지 못합니다. 나중에 되짚어보니 어머니가 마을 계모임 회비를 두 번 낸 게 그 전해 가을이었습니다.

2. 누가 문제를 호소하는가 본인이 “내가 요즘 정신이 없다”고 적극적으로 말하면 우울 쪽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인은 멀쩡하다고 하고 가족만 이상하다고 느끼면 인지 쪽을 봐야 합니다. 어머니는 여름 내내 “너희가 유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3. 힌트를 주면 떠올리는가 집에서도 해볼 수 있습니다. 어제 저녁 반찬을 물어보고, 못 떠올리면 “생선 있었잖아요” 정도의 단서를 줍니다. 단서로 살아나면 인출의 문제, 단서를 줘도 안 나오면 저장의 문제입니다.

4. 우울 치료 후에 살림이 돌아오는가 항우울제는 8주에서 12주는 봐야 효과를 판단합니다. 기분이 올라온 뒤에도 약 챙겨 먹기, 장보기, 공과금 처리가 제자리라면 인지검사를 요청하십시오. 저는 이 시점을 6월 4일에 알고도 7월 3일에야 움직였습니다.

5. 실수의 종류가 무엇인가 이게 가장 확실했습니다. 우울증은 ‘안 하는’ 쪽으로 나타납니다. 청소를 안 하고, 밥을 안 하고, 사람을 안 만납니다. 치매는 ‘하는데 틀리는’ 쪽입니다. 어머니는 밥을 하셨습니다. 설탕을 세 번 넣었을 뿐입니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를 그대로 두고 마을회관에 가신 것도 안 한 게 아니라 하다가 끊긴 것이었습니다.


진단 이후에 달라진 제도, 2026년 8월 기준으로 정리합니다

저희가 진단을 받던 때와 지금은 제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 시작하시는 분들이 알고 계셔야 할 것 세 가지입니다.

첫째, 치매치료관리비 소득 기준이 넓어졌습니다. 치매 진단을 받고 치매 치료제를 복용하게 되면 약제비와 약 처방 당일 진료비의 본인부담금을 월 3만원, 연 36만원 한도 안에서 실비로 지원받습니다. 예전 기준은 중위소득 120% 이하였는데, 보건복지부는 2026년 기준 소득 기준을 중위소득 140% 이하로 권고하고 있고, 소득 기준을 아예 없앤 지역도 있습니다. 지역마다 다르니 미리 포기하지 말고 관할 보건소에 직접 확인하십시오. 저희는 이 지원을 진단 후 넉 달이 지나서야 신청했습니다.

둘째, 2026년 8월 1일부터 보훈의료대상자도 지원 대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보훈의료대상자는 보훈병원과 위탁병원에서 의료비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치매안심센터 검사비·치료관리비 지원에서 제외됐습니다. 복지부와 국가보훈부 협의로 8월 1일부터 거주지 인근 병의원이나 치매안심센터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고, 3만 9천여 명이 새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보훈병원에서 이미 지원을 받은 경우 중복은 안 됩니다. 부모님이 보훈대상자라면 이번 달에 확인해보실 만합니다.

셋째, 치매관리주치의를 만날 수 있는 지역이 늘었습니다. 치매관리주치의는 신경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치매전문교육을 이수한 의사가 치매 증상과 함께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까지 한 곳에서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2024년 7월에 42개 시군구에서 시작했고, 2026년 8월 3일부터 92개 시군구로, 참여 의사는 315명에서 417명으로 늘었습니다. 2차 시범사업 기간은 2026년 7월부터 2028년 12월까지이고, 입원 중인 환자를 제외한 모든 치매환자가 대상입니다. 대학병원 신경과 예약이 석 달씩 밀리는 지역이라면 이쪽을 먼저 알아보는 편이 낫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진단 병원까지 편도 50분이었는데, 지금 같으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 겁니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

여섯 달을 돌아보면, 198일 중 실제로 필요했던 시간은 60일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서류를 안 챙겨서, 협약병원인지 확인을 안 해서, 그리고 제가 판단을 미뤄서 늘어난 날들입니다.

같은 자리에 계시다면 이 순서로 하시면 됩니다.

이번 주에 할 것. 통화를 녹음하십시오. 3주면 충분합니다. 같은 질문이 한 통화에 몇 번 나오는지 세면 됩니다. 냉장고를 열어 사진을 찍고, 약봉지를 세어보십시오.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아요”라는 말보다 “3주간 통화 11건 중 9건에서 같은 질문이 반복됐습니다”라는 문장이 진료실에서 훨씬 힘이 셉니다.

그다음 주에 할 것. 거주지 치매안심센터에 전화해 선별검사 예약을 잡으십시오. 만 60세 이상이면 무료입니다. 갈 때는 신분증과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를 함께 챙기고, 다음 단계 검사를 받을 협약병원 목록을 그 자리에서 받아 오십시오. 부모님께는 보호자도 같이 검사받는다고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

결과를 받은 뒤에 할 것. ‘인지저하’가 나왔다면 진단검사와 감별검사로 넘어갑니다. 검사비 지원 신청은 지원신청서와 소득·재산 조사 동의서를 갖춰 관할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 방문·우편·팩스로 제출하면 됩니다. 진단이 확정되면 치매치료관리비 신청을 같은 날 함께 하십시오. 저처럼 넉 달을 흘려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우울증 치료를 받고 계신 부모님이 있다면, 다음 진료 때 이 한 문장만 물어보십시오. “기분은 나아졌는데 살림이 안 돌아옵니다. 인지검사를 지금 해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문장을 6월 4일에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아직 여름 무를 심으실 때였고, 저는 그 계절을 조금 더 미루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 나가시고, 아직 제 이름을 부르십니다. 진단이 빨랐다고 해서 병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남은 시간을 어디에 쓸지는 진단이 있어야 정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집이 그 여섯 달로 배운 건 그것 하나입니다.


본 글은 가족 보호자로서 겪은 개인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인지저하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고, 진단은 반드시 전문의의 진찰과 검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검사비와 치료관리비 지원 기준, 치매관리주치의 참여 지역은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거주지 보건소 또는 치매안심센터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26년 8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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