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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부모 돌보다 지친 보호자, 상담에서 실제로 듣는 이야기

상담실 문을 닫고 나서야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는 보호자분들이 있습니다. 정신건강작업치료사로 치매 가족 상담을 진행하면서, 저는 이 순간을 가장 조심스럽게 마주합니다. 오늘은 치매 부모를 돌보다 지친 보호자분들이 상담실에서 실제로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지, 제가 직접 상담 현장에서 듣고 겪은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치매 부모 돌봄으로 마음이 무너지고 계신 분이라면, 이 글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상담 초반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말

치매 가족상담을 처음 시작하면 보호자분들은 대부분 증상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요즘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해요”, “밤에 안 주무세요” 같은 정보 전달이 먼저입니다. 저는 이 시기를 ‘보고 단계’라고 부릅니다. 감정이 아니라 사실을 나열하는 시기죠.

제가 만났던 60대 초반 여성 보호자분은 첫 상담부터 세 번째 상담까지 어머니의 증상 변화만 담담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목소리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제가 먼저 이상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네 번째 상담에서야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도 이제 이 병이 뭔지 알겠는데, 제가 지치는 건 병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는 순간을 매일 확인해야 하는 것 때문이에요.”

이 말이 나오기까지 세 번의 상담, 대략 6주가 걸렸습니다. 치매 부모를 돌보는 보호자분들이 상담에서 진짜 감정을 꺼내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급하게 물어보면 오히려 방어적으로 변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초반 상담에서는 감정을 캐묻지 않고 기다리는 편입니다.

형제자매 갈등, 상담 기록으로 남겨본 패턴

치매 부모 돌봄 상담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뒤늦게 등장하는 주제가 형제자매 간의 갈등입니다. 제가 최근 1년간 진행한 가족 상담 사례를 다시 살펴보니, 주 돌봄자 단독으로 상담을 신청한 경우 상담 3회차 이후에 형제자매 이야기가 나온 비율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 상담 1~2회차: 부모님 증상, 병원 진료, 약 복용 이야기 중심
  • 상담 3~4회차: “다른 형제는 잘 오지도 않아요” 같은 언급이 짧게 등장
  • 상담 5회차 이후: 돈 문제, 요양 등급, 재산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확장

한 번은 상담 도중 보호자분이 휴대폰을 꺼내 형제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직접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엄마 상태 안 좋다고 연락했는데 답장이 이틀 뒤에 왔어요”라는 말씀과 함께요. 저는 그 순간 상담의 초점을 부모님의 인지 기능에서 보호자 본인의 소진 상태로 옮겨야 한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치매 부모 돌봄에서 지치는 이유는 병 자체보다 이런 ‘혼자 짊어진다’는 감각에서 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거든요.

제가 초반 상담에서 놓쳤던 두 가지 실수

정신건강작업치료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저도 상담에서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상담자분들이나 보호자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대로 적어봅니다.

첫 번째 실수는 너무 빨리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보호자분이 “요즘 잠을 못 자요”라고 하셨을 때, 저는 바로 수면 위생 관리법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제 조언을 듣는 대신 갑자기 눈물을 보이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원했던 건 해결책이 아니라 “잠을 못 잘 만큼 힘드시겠어요”라는 한마디였습니다. 정보는 필요할 때 줘야지, 감정이 넘칠 때 주면 오히려 대화를 끊는 역할을 한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두 번째 실수는 보호자의 죄책감을 너무 빨리 위로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가끔 엄마가 빨리 안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라고 어렵게 꺼낸 말에, 저는 반사적으로 “그런 생각 하실 수 있어요, 자연스러운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문제였습니다. 그분은 위로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자기 자신을 누군가 판단 없이 들어주기를 원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위로가 너무 빠르면 그것 역시 회피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저는 이 사례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상담실에서 자주 나오는 세 가지 감정, 그리고 다른 접근

치매 부모 돌봄 상담을 하다 보면 감정이 크게 세 갈래로 갈리는 걸 느낍니다. 각각 접근 방식도 조금씩 달라져야 합니다.

첫째는 ‘분노형’입니다. 부모님께 화를 낸 자신에게 다시 화가 나는 패턴을 보이는 분들인데, 이런 경우 저는 감정을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화가 난 순간을 구체적으로 되짚어보게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났는지 되짚다 보면 대부분 ‘내 노력이 아무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라는 공통점이 나옵니다.

둘째는 ‘무기력형’입니다. 말수가 눈에 띄게 줄고, 상담 중에도 대답이 짧아지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께는 오히려 질문을 줄이고, 침묵을 견디는 시간을 늘립니다. 성급하게 채우려 하면 더 위축되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셋째는 ‘과잉기능형’입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려는 분들인데, 겉으로는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번아웃 위험이 가장 높습니다. 이 유형은 스스로 지쳤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상담이 진짜로 시작됩니다.

세 유형 모두 결국 상담자의 역할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상담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많은 보호자분들이 “이 정도로 상담까지 받아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오십니다. 제 경험상 아래 세 가지 신호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망설이지 않고 상담을 알아보시길 권합니다.

  •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거나, 반대로 감정이 아예 느껴지지 않을 때
  • 형제자매와의 대화를 피하게 되거나, 대화만 하면 싸움으로 끝날 때
  • 하루 중 부모님 생각이 나지 않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그 문제에 붙잡혀 있을 때

전국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가족을 대상으로 무료 상담과 가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용 부담 없이 가까운 센터를 통해 첫 상담을 시작해볼 수 있으니, 아래 중앙치매센터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까운 센터를 먼저 확인해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상담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냥 한 번 가서 앉아보는 것에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치매 부모를 돌보는 보호자로서 느끼는 감정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화가 나도, 지쳐도, 가끔 도망치고 싶어도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혼자 버텨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신 김에, 가까운 치매안심센터에 전화 한 통만 걸어보시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바랍니다. 그 한 통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andend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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